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가 재미있었던 이유에는 화려한 볼거리 가운데 생각할만한 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힘은 다수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되는 것이 옳다는 입장과 다수가 항상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입장 사이의 충돌이었다. 이와 같은 문제는 권력의 배분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이 권력의 배분문제는 정치학의 가장 큰 화두로서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논쟁이 되었던 주제 중 하나이다. 미국의 헌법이 만들어질 무렵 미국의 국부들의 가장 큰 문제의식 중 하나는 다수의 전제의 가능성이었다. 미국의 정치제도는 미국 국민들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어느정도 반영하지 말아야 했다. 이 결과 미국의 헌법에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어느정도 방지하는 제도가 설계되었다.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의 저자는 미국인들의 헌법에 대한 맹목적인 시각을 재고해 보라고 촉구한다. 미국 헌법 제정 당시 미국의 헌법 입안자들은 훌륭한 사람들이었지만 그 사람들은 당시 시대 상황에서 독립적일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인 한계를 가진다. 단순 다수로서 민중의 지배를 신뢰하지 못했던 지도자들의 민주주의는 매디슨적 민주주의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대중을 믿지 못하는 시대적 한계, 미래 예측의 한계, 드리고 타협안으로서 상황적 한계로 인하여 미국 헌법에는 어느정도 비민주적인 요소가 반영되었다.

저자는 1950년대 이후로 민주주의가 지속된 국가들을 대상으로 미국의 헌법체계의 특징을 분석하며 미국의 헌법이 결코 표준적인 형태가 아님을 지적한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이고 양원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의회의 대표가 인구수를 그대로 대표하지 않아 대표의 불평등이 존재한다.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는 강력한 법률 심사권을 가지고 있다. 또한 비례대표제가 아닌 단순다수제 투표를 시행하고 있어 양당의 정당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무엇보다 미국의 독특한 대통령 선거제도를 지적한다.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는 역사상 몇 차례동안 미국 시민의 다수가 선출했던 결과를 뒤집을 정도로 미국 시민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저자는 미국의 헌법을 평가하고자 다섯가지 기준(민주주의 체제의 유지, 민주적 기본권의 보호, 시민들간 민주적 공정성의 보장, 민주적인 합의 형성의 장려, 문제 해결에 유능한 민주 정부의 구성)에 따라 미국의 헌법을 비교, 평가한다. 저자는 헌법 체계와 그 결과의 인과관계 규명의 어려움을 역설하면서도 미국 헌법체계의 한계를 지적한다. 대표 선거의 다수대표제는 비례대표제에 비하여 유권자들을 효과적으로 대표하지 못하며 합의제적인 특성이 약하다. 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는 각각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미국은 이 두 제도중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에 혼성체계를 사용하고 있고 이로 인하여 두 제도의 단점만을 반영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헌법의 목표로서 정치적 평등을 제안하고 이 기준으로 미국 헌법의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헌법제도는 너무나 완고하게 확립되어있기 때문에 헌법이 바뀌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의 시작으로서 헌법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촉구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어떤 것이든 불변하는 것은 없고 맹목적인 믿음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진리가 헌법에도 적용된 다는 점을 지적해 주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고 이러한 환경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인간의 창작물 중에 ‘완벽’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대상을 수정해 나가야 한다. 로버트 달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미국의 헌정체계 또한 그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독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미국 헌법의 비민주적인 특성이 드러나는 것에는 헌법의 평가 기준또한 시간에 따라 변화했다는 점도 기여했다는 것이다. 달은 미국 헌법을 철저히 현대적인 시각에서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미국의 헌법을 평가할 때 5가지 기준을 통하여 평가하는데 이의 대부분의 항목이 정치제도의 민주성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거 미국의 헌법 입안자들은 군주제의 비합리성을 극복하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장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정치체계를 설계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당시에 입안자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은 다수의 방향과 항상 일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헌법에 비민주적인 특성이 반영된 것은 필연적이였다. 즉, 변화한 것은 국가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당시 헌법입안자들도 이를 모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업적을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고찰이 존재해야 한다. 다수의 방향은 항상 옳은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이는 캡틴 아메리카와 헌법입안자들의 공통적인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헌법 입안자들은 국민들 대표하는 식견있는 정치인들은 감정적으로 휩쓸리기 쉬운 대중들과는 달리 옳은 방향을 알고 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캡틴아메리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최장집교수는 이 문제를 민중적 민주주의와 매디슨적 민주주의 사이의 갈등으로 보여준다.

최장집 교수는 매디슨적 민주주의를 대중을 신뢰하지 못한 구시대적 발상으로 묘사한다. 이에도 일리가 있는 것이, 매디슨적 민주주의에는 엘리트 주의로 변질될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자신들은 다수의 잘못된 선택에 휩쓸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독립적으로 옳은 것의 기준 또한 캡틴 아메리카와 메디슨의 주관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옳은 방향에 대한 가치평가는 각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현대의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안정적인 국제 정세에서는 과거에 비해 외부의 정복과 전쟁보다 내치에 더욱 비중을 많이 둔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구조가 국민들을 더욱 잘 대변하는 민주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당시 외부적인 갈등이 많았던 시기에 국제 관계에서는 국민들의 감정을 대표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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