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 심리학에 의하면 사람들은 백지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를 배우는 기본적인 틀을 갖추고 태어난다. 비록 경험을 통하여 이를 수정해 나가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구조는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화자는 이를 찾아보기 위해 다양한 문화를 연구하여 도덕심 형성의 가장 보편적인 기초가 되는 5가지 요소를 발견하였다. 첫번째는 고통에 대한 배려, 그리고 이를 탄압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이다. 두번째는 공평성과 상호 호혜성이다. 세번째는 자신이 속한 단체에 대한 충성심이다. 동물들도 기본적인 집단을 형성하기 때문에 이러한 의식이 있지만 거대한 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유일하다. 네번째는 권위에 대한 존경심이고 다섯번째는 순결성과 신성함이다. 이는 반드시 성 관련된 것 뿐만 아니라 청결이나 건강과 같은 몸에 대한 전반적인 모든 것을 포함된다. 다양한 문화를 막론하고 인간이 느끼는 도덕심에는 이 다섯가지 요소가 강력한 후보를 차지한다.

이 다섯가지 기초는 말그대로 인간 도덕심 형성의 기초를 형성하고 이는 이후의 경험에 따라 개발되어 개인마다 다양한 양상의 도덕심을 형성한다.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문화권의 진보, 중도, 보수를 조사해본 결과 고통에 대한 배려, 그리고 공평성 항목은 진보가 조금 더 우세했지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인류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가해나 공평성에 대해서 도덕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세 항목에 대해서는 큰 차이를 보였다. 보수는 이 세가지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던 반면 진보는 이를 도덕성이라고 간주하지 않았다.

진보주의자 입장에서는 그 세가지가 왜 도덕성에 포함되는지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사회는 항상 쇠퇴하며 사회적 엔트로피를 증가시켜왔고, 질서는 쇠하고 만다는 진리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한 실험은 의미심장한 결과를 보여주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 간의 협력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하지만, 어느정도의 처벌이 도입되면 협력을 유의미하게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종교는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인간의 도덕심리를 최대한으로 활용한 결과이다.이로 인하여 단체에 대한 충성심, 권위에 대한 존중이나 순결성을 강력한 도덕심으로 발전시키는 문화유산이 전승되어 온 것이다. 그 반면에 진보주의자들은 약자와 억압받는 자들의 입장에서 변화와 정의를 추구한다.

질서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가졌지만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각자의 역할을 통하여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동양의 위대한 종교들은 이에 대한 통찰을 포함하고 있다. ‘음과 양’, “분명한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결코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말지어다. 찬성과 반대의 사이에서 번뇌하는데 마음의 가장 큰 병이 있다”와 같은 말은 양쪽 역할의 균형성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서로 분리되어 다른 집단(진보/보수)을 형성하는 경향을 가지도록 진화해 왔고 이는 우리가 진리를 인식하는데 장애가 되어왔음을 보여준다. 자신이 느끼는 도덕심은 실제 추론의 결과보다는 위와 같이 형성된 도덕된 직관의 결과일 확률이 높다. 이 도덕심은 사람마다 다르며, 자신의 도덕적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도덕적 겸손함을 갖출 때,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도덕심이란 어떤 것이 옳거나 그르다고 느끼는 마음이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도덕심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여왔다. 칸트는 이를 정언명령으로 설명하고 유가에서는 사단칠정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이러한 철학자들은 인간은 모두 도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철학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이 ‘보편적 도덕심’의 개념은 인류 철학사의 두 축인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논쟁에서 중요한 한 축을 점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가장 일반적인 기준은 기득권의 유무이다. 기득권에는 여러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데 경제적으로는 시장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 즉 경제력을 의미하기도 하고 정치적으로는 정권을 가지고 있거나 다수인 세력, 즉 권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치적 견해가 기득권에 좌우된다는 견해는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정치적 견해 또한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시각이 전제되어 있다.

이 견해는 어느정도의 현실정합성을 갖지만 동시에 오해를 유발하기 쉽다. 사람들의 정치적 견해가 오직 기득권 유무에만 달려있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과 상관없이 기득권을 유지 혹은 차지하려는 욕심에만 의존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정치인이나 법조인 집단은 사리사욕을 추구하고 기득권 유지에만 관심이 있으며 사회를 개혁하려는 시민단체나 정치단체는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속설은 상대측에 대한 강한 편견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에 입각한 정치적 논의는 쉽게 감정적으로 변질되어왔다. 이 견에 따르면 상대방은 비양심적이며 자신의 사익만을 추구한다고 간주하고 선/악의 논쟁까지 이르기도 한다.

한국사회의 진보, 보수의 논쟁이 감정적인 양상을 띄는 것의 바탕에는 ‘보편적 도덕심’이라는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이 관념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맞지 않다. 도덕심이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이를 느끼는 요소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이 요소에 따라 개인의 정치적 견해가 결정된다. 인류가 어느 동물보다 거대한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문화의 영향을 받아 질서에 대한 도덕심을 강하게 형성하였을 것이며 기득권의 유무는 이러한 도덕심의 형성 작용 과정에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들은 질서를 저해하는 요소에 대해서 도덕심을 느낄 것이고 누구보다 자신의 양심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을 수도 있다. 보수과 진보의 차이는 정보의 차이가 아니라 실제로 느끼는 것의 차이이다.

도덕적 판단은 논리적 추론보다 도덕적 직관이 우선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는 매우 어렵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첫걸음은 상대와 내가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것과 자신의 도덕적 판단도 직관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점차 정치에 관한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논의의 양상은 유난히 옳고 그름을 논쟁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정치적 견해를 기득권이라는 한가지 요인으로 환원하는 것은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를 그름으로 규정하려는 독단주의의 결과일 수 있다. 이 견해는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설득하려는 문화를 저해한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논리적 논쟁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설득에 중요하며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도덕적 겸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