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해 역사를 볼 때의 강점과 약점 : 김훈의 남한산성 읽기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담담하고도 서정적인 문체였다. 책은 손에 잡히자 마자 멈추지 않고 읽혀 내려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김상헌이 되었고 최명길이 되었으며 서날쇠가 되고 인조가 되었다. 하지만 남한산성의 첫 페이지에는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그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없다.’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소설은 역사로 간주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설은 ‘허구를 통하여 인생의 진실을 표현하는 산문적인 문학 형식’으로서 감동을 창조하고 전달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그 반면 역사학은 과거에 있던 사실에 대한 연구이다.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의 대전제는 사실에 가까워 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사실과 일치여부 보다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것이 중요한 문학은 역사와 명백한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문학은 매력적인 콘텐츠로서 역사적 배경이나 사건을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문학은 흥미를 위하여 개연성 있는 상상력과 극적 구성을 활용하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이해하기 쉬워 대중들에게 접근성이 높다. 이런 효과는 문학 뿐만이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또한 작가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자신의 시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사건이 새롭게 부각되기도 하고 새로운 관점이 더해지기도 한다. 독자는 감정이입을 통하여 역사적 상황속에 있는 듯한 감정을 느끼고 이를 통하여 당시 시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할 수 있다. 나아가 독자는 작품을 통하여 특정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남한산성을 읽고 병자호란이라는 사건이 나에게 좀 더 특별해 진 것이 그 예이다. 이 결과 독자는 역사적 사건에 감정적 애착을 형성하며 이는 실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즉, 문학을 통한 역사는 대중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문학을 통하여 역사를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문학은 사실에 가까워 져야 한다는 제약이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역사와 다르다. 이와 같은 성격 때문에 간혹 문학을 통하여 잘못된 역사적 사실이 묘사되기도 한다. 이는 무지나 무관심, 혹은 더 큰 흥미를 위한 작가의 곡해가 원인인 경우가 많은데 문학의 강한 전파성 때문에 더욱 큰 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된 곡해일 경우 작가는 윤리적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검증된 사료나 학계에서 동의된 사실에 대한 오류는 역사적 증거로 반박이 가능하며 역사학계는 이에 반박하는 목소리를 낼 책임이 있다.

하지만 더욱 미묘한 문제는 문학에서의 다루는 역사적 사건, 인물에 대한 시각의 편향이다. 역사학내 에서도 객관적 사실의 서술이 가능한지는 아직도 논쟁적인데 주관적인 시선과 묘사를 지닐 수 있는 문학에서는 이러한 편향가능성은 더욱 크게 드러난다. 이광수의 ‘단종애사’는 우수한 역사소설이란 평을 받고 있지만 계유정란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은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네이버 웹툰 ‘칼부림’은 이괄의 난을 그려낸 웹툰으로서 역사적 고증에 최선을 다한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으나 초점이 이괄의 난이었기 때문에 김류는 부정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남한산성의 김류를 보는 나의 시각에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독자는 작가의 주관적 시선에 영향을 받는다.

역사적 소재, 인물의 선택만으로 작가의 시점은 반영될 수 있다. 201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러시아 여성 군인들의 인터뷰만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았다는 점에서는 객관적이나 러시아 여성군인의 시각만을 서술했다는 점에서는 주관적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논리에서 티오도르 몸젠의 ‘로마사’도 주변 역사가 아닌 로마의 역사를 서술했다는 점에서 주관성이 반영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각의 편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계는 매우 미묘하여 역사학 입장에서 이에 대해 엄격히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역사학에서는 역사적 중요성을 기준으로 역사적 사건을 선별하고 최대한 다양한 시각을 다룰 수 있고 그렇게 해야하지만 문학은 여건상 힘들다. 하지만 사실에 대하여 점점 엄밀해 질수록 이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은 감소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문학은 역사학이 가지지 못한 강점을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분별있게 이용해야 한다. 조금 덜 정확한 사실이 전파되더라도 사람들이 역사에 더욱 관심이 많아진다면 자신이 스스로 진위 여부를 알아보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관심의 환기 만으로도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역사학계는 이에 대하여 문학 내의 잘못된 정보는 바로 잡고 과도한 편향에 대해서는 지적하되, 문학을 통하여 다양한 시각이 등장하는 것은 최대한 관용적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